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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심의 변화

2015.06.25 17:31

Gus 조회 수:3006

내 신심의 변화

 

내가 내 자신의 속을 보고 내 신앙이 깊네 얕네 할 수는 없는 일이고, 다른 사람의 신앙에 대한 나의 생각과 마음이 변화하고 있다는데서 나의 신심을 비춰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다른 사람들의 참된 신앙이 내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 신앙에 대한 나의 생각의 방향이 아주 긍정적인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유 상종이란 말이 있죠. 같은 종류끼리 서로 따른다. 좀 어렵게(?) 얘기하면 끼리 끼리 논다. 더 고상하게 말하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하고 상통하는 말이죠.

제가 국민 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 갈 때까지만 해도 우리 큰 누나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뻤어요. 주위를 아무리 봐도 큰누나 만큼 예쁜 여자가 없어요. 그야 말로 여자는 있어도 미인은 없다였어요. 그런데 여자에 대해서 눈을 뜰 때가 되니까, 오해 마세요. 그저 여자가 이성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누나 보다 예쁜 여자가 쎘어요. 세상은 넓고 미인도 많더라는 얘기예요. 또 결혼하기 전 연애할 때나 결혼 후에도 마누라가 임신하기 전에는 임산부가 눈에 띄지 않더니 마누라가 임신을 하니까 배부른 여자들이 왜 그렇게 눈에 많이 띱니까? 이런 얘기들이 다 자기 생각의 범위만큼 주위가 보이고 자기 생각의 방향대로 사물을 보는 눈도 따라 간다는 예가 될 겁니다.

전에는 왜 그런지 내 눈에는 신심은 전혀 없이 주님을 입에만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사실 입에 담기에도 경외스런 우리 하느님, 여기 애들 말 말고 그야말로 awesome 한 주님이신데 아무데서나 아무 때나 아무 일에고 그저 하느님을 찾고 주님의 뜻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귀 같이 잇속만 밝히며 뒤로는 온갖 구린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장사할 때는 겉으로만 고상한 얼굴을 하고 그저 주님을 찾습니다. 이 물건을 파는 것도 하느님의 뜻, 이 그로서리를 인수한 것도 주님의 뜻. 우리의 경건하게 모셔야 할 하느님을 그저 아무데나 막 갖다 붙여요.

또는 십자가 앞에서 그저 손을 부벼대는 사람들. 도대체 예수가 누구며, 어떤 말씀을 하셨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성경 한 구절 읽어 보지 않고, 십자가 앞에서 아들 낳게 해 줍시사, 우리 아들 학교에 붙게 해 줍시사 그저 바라는 것을 주문 외듯 하는 사람들. 예수가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는가 등등 아무런 지식이 없으면 이런 기복 신앙에는 그 십자가가 성황당 돌 무덤이라도 좋고, 십자가 대신 정한수 한 그릇을 가져다 놓는다 한들 무엇이 다를 바 있겠습니까? 어렇게 자기 나름대로의 예수에게 빌어 대는 신앙을 참 신심이라고 할 수는 없죠. 그런 사람에게 십자가는 자신만의 우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기독교가 미신화되고 십자가가 우상화 되고 있다는 얘기죠.

성경 한 구절 읽어 보지 않고 주여 주여 하면서 뛰고 구르고 울부짖으며 소리 치는 사람들, 그런 식으로 카타르시스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미사 중 엄숙한 분위기에서 가라 앉은 찬송가를 부르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 어둠 속에서 구슬픈 노래 들으며 떠나간 옛님과의 추억을 회상하도 눈물은 나오는거 아니야 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앞서 얘기한 사람들이 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을 자주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어쩌면 저렇게 항상 주님 생각을 하며 살 수 있을까 하고 부러워지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이들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나도 저렇게 열심히 기도해야겠다는 모범이 됩니다. 눈물 흘리며 큰 소리 내는 사람들, 어쩌면 저렇게 열성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 부럽습니다. 뭐든지 왜곡하고 삐뚜로 보는 사고 방식에 따라 그런 식으로 그 범위 밖에 못 보던 나의 눈이 이제는 긍정적으로 남의 신심도 헤아리게 된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은 자기 사고의 범위 속에서 사고의 방향대로 사물을 보게되죠.

 

저는 인간들이 나쁜 짓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일으키고 하는 것이 역설적이긴 하지만 인간이 인간임을 하느님이 보여 주시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쟁도 없고, 나쁜 일도 일어 나지 않고 억울한 일도 없게끔 하느님이 이 세상을 계속 조종해 나가고 있다면, 그 때는 인간이 인간이 아니고 로보트나 컴퓨터 모니터의 커서 같은 게 되겠죠. 인간의 존엄성은 이성, 감성을 가지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모든 일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서 찾아지는 거죠. 이러한 주요 의지를 주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고,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만드신 귀중한 인간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계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유 의지로 계속 나쁜 짓만 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만든다면 하느님의 존재 의미는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의 세속의 일들을 결코 이끌어 가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 누구에나 그들의 마음 속에 하느님의 공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 공간에 발을 디디느냐 디디지 못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자유 의지를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하느냐 그러하지 못하느냐가 결정되겠죠. 마치 언제나 비치는 햇빛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가 아니면 햇빛을 받으면서도 혹은 항상 음지에 숨어 햇빛의 고마움을 모르고 지내느냐의 차이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역사, 인간사 돌아가는 이치가 선이 이기는 것을 봅니다. 우리 인간들 모두가 그들의 생각과 마음 속에 마련돼 있는 하느님의 공간을 발견하고 그 속을 자신의 자유의지와 행동으로 가득 채우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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