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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형, 우리 서른 살 무렵의 절망했던 한 때를 기억하오? 한밤중 잠자다가 몇 번씩 벌떡벌떡 일어나 엎드리고, 길가 눈 속에 꿇어 기도하던 나의 모습을 T형은 아마 기억 할거요. 그리고 그 일이 성사되지 않았을 때 처연한 내 모습을 T형은 바라보고 있었소. T형, 그 때 T형은 나에게 말했소. 주님은 결코 우리 앞날의 일을 결정해 주시지는 않는다고. 인간사가 하느님에 의해 결정된다면 사람들이 마치 컴퓨터 화면의 커서와 같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말 것 아니냐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단 한가지 하시지 않는 일은 인간에 관한 일들이라고. 당신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고 숨결을 불어넣은 인간들이 자유 의지에 따라 살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주시는 것이라고.
 
그리고 T형은 나에게 속삭였소. 일의 성취는 주님께 기도로 구함으로써, 기도의 응답으로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개개인이 각자 자신의 마음속에 모시고 있는 주님께 간구하며 힘을 얻어 인간 스스로가 성취해 나가는 것이라고. 돌이켜보면 우리는 감히 주님을 분석하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는 불경을 저지르고 있었던 거요.
 
T형, 어쨋든 현실에 나타난 절망스런 결과가 증거 되는 형의 논리는 그때부터 나의 믿음과 신앙 생활의 바탕이 되고 말았소. 결코 주님은 나와 함께 실재하며 현존하시는 분은 아니었소. 나의 기도에 귀기울여 주고 응답해 주시는 분은 아니었소. 나는 다만 2000년 전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주님을 믿을 뿐이었소. 그것은 허상이었지 현존하시며 나와 늘 함께 계시는 그런 나의 주님은 아니었던 거요. 나는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유업과 유지를 기리고 받들어 모시는 그런 신앙 생활을 했던 것이었소.
 
T형, 성령 세미나에 찾아 갔을 때에도 T형은 내 가슴에 주님에 대한 의문 부호만을 안겨 주고 있었소. 마음 저편 구석에서 지금이라도 주님을 나의 인간 감각으로 느낄 수만 있다면 현존하는 당신을 믿겠다는 강렬한 욕구가 불붙고 있었지만 이는 진정한 믿음의 갈구가 아닌 하느님 존재에 대한 강한 의문에 지나지 않는 또 다른 불경이었소. 성령을 받아들이고 싶은 순수한 바램보다는 성령 체험을 나의 신앙의 증거로 삼으려는 그런 불순함에 다름이 아니었소.
 
T형, T형은 지금도 느낌으로 다가오는 주님은 역시 없다고 나에게 말하고 있지만, 나는 왠지 부끄럽고 죄스러운 느낌에 몸둘 바를 모르겠소. 체험을 주지 않으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어렴풋이나마 헤아려지기 때문이요. 발톱의 떼만도 못한 못난 자가 감히 주님을 돼먹지 않은 논리로 규정하고 정의하려던 교만함이 부끄럽고, 주님의 존재하심을 시험하려 했던 의심에 가득찬 더러운 영혼이 죄스럽소.
 
마치 내 어머니가 여자임을 확인하려고 치부를 들여다 보려 한 것처럼...부끄럽고, 죄스럽고, 못나고... T형, 이때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내게 들려 온 말씀이 있었소. 믿음은 체험이나 느낌이 아닌 굳은 의지의 결단이라고.
 
나는 이제 T형을 떠나려 하오. 굳은 의지만을 지니고 내 가슴속에 도둑처럼 웅크리고 있던 교만과 의심은 모두 형에게 떠맡기고 나는 가겠소. 이제 어둠의 긴 터널을 빠져 나와 한 줄기 빛을 보는 듯 하오. 주님의 말씀이 들리는 듯 하오. -- "네가 나를 진심으로 믿게 될 때 애쓰지 않아도 너는 나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진실로 나를 믿고 진정한 신앙을 가지면 나는 너의 온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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