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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애인

2015.07.13 04:33

Gus 조회 수:687

 아들의 애인

 

  아들의 나이가 서른여섯을 넘어섰다. 아들 생각을 하면 늘 흐뭇해 모든 근심이 달아나버리는 기쁨으로 살아왔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기분에 슬슬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뭔가 숙제를 미뤄놓은 것 같아 개운하지가 않고 괜히 답답하고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녀석이 아직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생긴 숙제다. 많은 사람들이 일등 신랑감으로 부러워하는 친구 아들 하나가 결혼을 질질 끌더니 결국은 미국 애를 데리고 왔더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것도 애 딸린 이혼녀를. 조급증을 내고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하루는 영미가 은근 슬쩍 물었다.

  아들의 신념은 확고했다. 엄마 마음에 쏙 드는 여자애를 데리고 올 테니 결혼에 대해서는 아무 염려 말라 했고, 또한 자기는 김씨 성을 가진 집안의 장손이니 결혼은 절대적으로 한국 여자하고 할 것이라 했다. 더구나 2세를 위해서도 꼭 한국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일 미국 여자랑 결혼을 하면 애가 서양 얼굴을 하고 세상에 태어날 텐데, 그 생각을 하면 자존심이 상한다나? 또 얼굴 생김새하고 김씨 성하고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고 껄껄 웃기까지 하면서 장담을 했다. 영미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학교 다닐 때도 자기를 한 번 더 쳐다보는 여자들을 다 한국 애들이지 미국 애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해 안심이 되었다. 한데 지금은 한국 여자를 만날 기회가 없지 않은가?

  영미가 맞선이라도 보라고 하면 아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연발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나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타입이지 요새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에요.”라고 말을 해 영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아들은 지금 샌디에이고에 있는 아이 티 컴퍼니에서 일하고 있다. 컴퓨터 전반에 걸친 시스템을 설치해주는 회사라고 한다. 그리고 출장을 자주 다녀야 하는 직책을 맡아 굉장히 바쁘게 산다. 며칠 전엔 보스턴으로 출장을 간다고 전화가 왔었다. 이번에는 두 달가량 걸릴 것이라면서 녀석이 기특하게도 엄마 구좌에 용돈도 듬뿍 넣어주었다.

  엄마한테 뿐만 아니라 할머니한테도 용돈을 푹푹 잘 준다. 독신으로 있으니 다른 데에 돈을 너무 헤프게 쓰고 다니는 것 같아 결혼이 더 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렇게 일에 빠져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으니 언제 여자를 만나고 또 데이트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상대하는 사람들이 전부가 미국인이라 한국 여자를 만날 기회는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 저러다가 세월만 자꾸 보내고 서른일곱, 서른여덟····. 그리고 마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는 충격이 왔다. 아찔했다. 그러다가 또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내가 괜한 생각을 하는 걸 거야. 내 아들이 어디가 어때서. 곧 좋은 배필이 나타날 것이 분명해.’ 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남자 서른여섯은 그리 늦지 않은 나이이니 조금도 조급하게 생각지 말라면서 “요즘은 능력 있는 애들이 결혼을 더 늦게 하는 추세가 있어. 인연이라는 게 갑자기 불쑥 나타나기도 하니 마음 편하게 가져.” 하고 말을 하지만 그 말은 위로에 불과할 뿐이다. 한 친구는 “결혼을 안 하면 또 어떠냐? 부모한테 더 잘 하고 좋지. 어떤 집 보니까 부모한테 잘 하던 애가 결혼을 하더니 아주 남이 돼버렸다고 하더라.” 면서 그것도 위로랍시고 그녀를 콕콕 찌르기도 했다.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그녀는 부럽기가 그지없다. 결혼을 한다는 그 자체가 부러웠다. 그 짝이 미국 사람일 경우도 많았으나 그런 건 하나도 개의치 않았다. 아들은 분명히 한국 여자랑 결혼을 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거는 며느릿감의 조건은 양친 부모 밑에서 화목하게 자라고, 4년제 대학만 졸업하면 된다. 아주 쉽게 손에 잡힐 수 있는 소박한 꿈이다. 거기다가 얼굴이 예쁘다면 더 환영이나 그건 아들이 알아서 할 문제다.

일곱 살 때 미국에 온 아들은 한국말을 아주 잘하고, 한국 문화에도 익숙하다. 장손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뜻도 잘 안다. 또 엄마랑 같이 할머니 집을 자주 방문했기에 요즘도 엘에이에 올 땐 시간을 내서 할머니를 찾아뵙는다. 손자를 볼 때마다 언제 장가갈 것이냐고 성화를 하시지만 녀석은 몇 마디 말로써 할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린다. 그녀는 손자만 보면 좋아서 항상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다.

어젯저녁엔 보스턴에서 건강하게 일 잘하고 있다는 아들의 전화가 왔었다. 밝고 활기 찬 아들의 목소리가 영미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 며칠 후, 뜻밖에 미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나는 영미의 조카로 아들과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들은 동갑내기로 어릴 적부터 친남매 이상으로 친한 사이다. 한동네에 살면서 학교도 같이 다녔다.

  “숙모님, 안녕하셨어요? 그동안 너무 오래 못 뵈었어요. 이번 주말에 제가 엘에이 가거든요. 그때 찾아뵐게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미나의 목소리다. 딸이 없는 그녀이기에 며느리를 맞으면 딸처럼 친하게 지내며 살고 싶어 미나 같은 며느리를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미나의 어머니는 영미의 손위시누로 좀 무지막지한 데가 있는 여자다. 젊을 때 혼자되어 세파에 시달린 탓도 있을 것이다. 미나는 그런 엄마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어떤 땐 해도 해도 너무 한다고 영미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만큼 미나는 외숙모인 영미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른다. 어떻게 그런 엄마한테서 미나 같은 딸이 나왔는지 기이할 정도다. 시누이는 가죽 허리띠로 목을 매는 시늉을 하며 “너 알지? 미국 사람이랑 결혼한다 그러면 엄만 이렇게 콱····.” 하고 미나를 어릴 적부터 세뇌 교육을 시켰다. 그런데도 미나는 미국 남자랑 결혼을 했다.

  사실, 미나는 결혼 문제로 인해 시누이의 속을 많이 썩였다. 미국 남자와 5년이나 사귀면서도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않고 질질 끌어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사윗감이 미국 남자라 울고불고 반대를 했지만 나중엔 그 사윗감이 변심이라도 할까 봐 마음을 졸였던 시누이다.

  결혼 준비를 완벽하게 한 다음 양쪽 집안의 도움은 일체 받지 않고 미나는 서른둘에 결혼을 했다. 성대하고도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 집도 미리 사 놓고 결혼 전 서너 달가량은 둘이 동거를 했었다. 시누이는 남부끄러워 못 살겠다고 쉬쉬했고, 영미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그러던 시누이가 지금은 아예 딸 집에 함께 기거하면서 애를 봐주며 살림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사위 자랑에 열을 올리느라 여념이 없다.

 

  오랜만에 보는 미나는 더 세련되고 아름다웠다. 항상 웃는 낯으로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는 미소 또한 변함이 없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그냥 인사로 들른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있어 일부러 영미를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나는 아들의 결혼 문제라는 커다란 과제를 들고 온 것이었다. 영미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이었고 아들에게서 완전히 배신을 당한 느낌이었다.

  아들이 이상형의 여자를 만나 드디어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여자가 미국 애라는 것이다. 아들보다는 두 살이 아래로 이름은 수잔이었다. 부모는 둘 다 화가이고, 그들은 이미 이혼을 한 상태였다. 설상가상이라더니 그 엄마는 그 후에 이혼을 또 두 번이나 더 하고 지금은 남자 친구랑 같이 산다고 하니 기가 콱 막혔다. 너무 큰 실망감에 가슴이 부르르 떨렸다. 아들의 꿍꿍이속도 모르고 혼자 애를 태운 자신이 우스꽝스러웠다.

  영미는 아들에게 엄마가 원하는 며느릿감은 양친 부모 밑에서 화목하게 자라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었다. ‘안 돼, 안 돼. 절대로 안 돼.’ 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우선은 참고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했다. 혹시 친구 며느리처럼 애가 딸린 이혼녀라는 말이 나오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하기까지 했다. 그 엄마에 그 딸 일수도 있지 않은가.

 

  1년 전, 아들이 다니는 회사에서 샌디에이고 병원의 신설 병동 컴퓨터 시설을 맡게 되었다. 크리스도 그 일원으로 서너 달가량을 병원으로 출퇴근을 했는데, 어느 날 구내식당에서 우연히 수잔을 만난 것이다. 수잔은 아들과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기에 어릴 적부터 아는 사이였다. 수잔은 바로 그 병원에서 소아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2년 아래이지만 미나도 수잔을 잘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치어리더 팀에서 같이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미나는 수잔의 가정환경에서부터 성격 등등을 자상하게 일러주었다. 크리스는 이미 수잔의 부모에게 인사를 했고 수잔 엄마의 남자 친구하고도 친한 사이라고 했다.

  1년 동안이나 사귀면서 어떻게 나한테는 말 한마디 안 하고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니? 더구나 그쪽 집안에는 다 광고를 해놓고 말야. 너도 그렇지, 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나한테 귀띔이라도 해주었어야 되는 거 아니었니?

  영미는 미나한테서도 깜빡 속았기에 서운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참, 숙모님도····. 크리스가 엄마를 속인 게 아니에요. 처음엔 그냥 대수롭잖은 사이였으니까 말을 안 했을 것이고, 나중엔 또 그만큼 부모 생각을 하니까 말을 못 하고 고민을 한 게 아니겠어요?

  미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결혼을 안 하려면 마냥 수잔을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이제는 양단간에 결정을 해야 할 시기가 되었고, 나이가 나인인 만큼 일단 부모한테 수잔을 선보인 다음에 결혼을 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그럼 선을 보인 다음에, 부모가 안 된다고 하면 안 하겠대?

  이미 반대의 빛이 역력한 영미의 말에 수잔은 만만찮음을 느꼈음인지 그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애를 쓰는 것이 역력히 보였다.

  “크리스는 효자이니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보스턴에 출장 갔다 와선 엄마한테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엄마는 자기를 이해하고 믿어주니 꼭 허락을 해줄 것이라고 했어요.

  영미는 자신이 아들과 미나의 손에 놀아나는 것 같아 한마디 쏘아붙였다.

  “그래서 크리스가 너보고 미리 가서 뜸을 들여놓으라 그러대?

  미나는 펄쩍 뛰었다. 자기가 외숙모를 찾아온 것은 아들은 모른다고 한다.

  “크리스한테 제가 찾아왔더란 소리 하시면 안 돼요. 숙모님이 미리 좀 알고 계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말씀을 드렸으니 절대로 모르는 척하셔야 돼요.

  

영미는 둘이서 짠 것 같아 아들도 미나도 믿을 수가 없었다. 미나의 말은 계속되었다. 아들은 미국 애하고의 결혼은 꿈도 꾸어본 적이 없기에 수잔을 그냥 친구로서 가끔 만났다. 결혼이란 일 대 일의 일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 간의 대사라는 것을 자기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수잔과의 결혼은 상상조차 안 했다. 그녀를 만나면 편했고 첫째는 이야기가 잘 통해 좋았다. 유머가 풍부하고 센스에 빠른 아들은 아직까지 수잔처럼 파딱파딱 머리가 잘 돌아가는 여자애를 만난 적이 없었기에 더 그랬다. 개중의 여자애들은 아들이 우스개소리를 해도 웃지를 않아, 쉬운 조크를 고르느라 애를 먹었는데 수잔을 만나면 그런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마냥 재미가 있었다. . . . 를 같은 학교에 다녔기에 공통 화제도 많았다.   

모든 분야에 박식해 텔레비전 게임을 보면서 경쟁 상대가 된 여자도 수잔이 처음이었다. 성격 또한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고집을 부리지 않고 매사에 자기 말을 잘 듣는 수잔이 갈수록 좋아졌다. 처음 봤을 땐 얼굴이 그리 예쁘지 않았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얼굴도 점점 예뻐 보였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모두 서론에 불과하다면서 미나는 가장 키포인트인 한마디를 했다.

  “크리스 말이 수잔이랑 결혼을 하면 일평생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든대요. 그동안 한국 여자애들이랑 만날 땐 그런 확신이 없었다고 해요. 결혼 생각을 하면 괜히 구속당하는 것 같고 또 갑갑했는데 수잔을 만나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 해요.

  ‘결혼, 평생, 행복.’이라는 세 단어가 영미의 머릿속으로 왕왕거리며 파고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영미의 마음이 웬만큼 누그러져 있음을 느꼈음인지 미나는 키포인트인 또 다른 한마디를 던졌다.

  30년이 지나도록 크리스가 얼마나 좋은 아들이었어요? 한 번도 부모님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효자였잖아요? 그런데 결혼 문제는 다른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랬고요. 만일 숙모님이 미국 애라는 조건 때문에 반대를 하신다고 해도 크리스가 그 말씀을 따르지는 않을 거예요. 결혼 문제만큼은 자신이 결정한다고 분명히 말했거든요.

  드디어 미나의 입에서도 아들의 진심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반대를 해도 크리스가 말을 듣지 않을 테니까 일찌감치 포기하고 속 차리라는 말이겠지? 병 주고 약 주는 미나도 괘씸하고 크리스도 괘씸했다.

  이미 다 결정이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부모한테 선을 보인 다음에 결정하겠다고 한 것은 말뿐이고 절차에 불과할 뿐이다. 엉큼한 놈. ? 결혼 문제만큼은 지 맘대로 한다고? 그러면 다른 문제엔 지 맘대로 못한 게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엄마 때문에?

  그간에 영미는 무엇이든지 아들의 결정에 따랐고, 어떤 땐 좀 맘에 안 들어도 아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었다. 아들을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크리스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엄마 때문에 포기한 적은 없다. 영미가 다 양보했다. 그래놓고 뭐가 어쩌고 어째? 하고 따지듯 말하는 영미에게 미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손을 내저으며 변명을 했다. 계속 얘기를 하는 동안 수잔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이혼한 사실이 미나 생각에는 하나도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있음을 영미는 감지했다.

  “크리스가 너한테 수잔 부모가 이혼해서 엄마가 싫어할 거라는, 그런 얘기 안 하대?

  “아니 참, 숙모님도····. 그런 게 무슨 상관이에요? 수잔 부모님, 두 분 다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계세요. 크리스도 그런 건 아무치도 않게 생각해요.

  또 한 대 얻어맞았다. 어디선가 ‘영미야, 꿈 깨라. 꿈 깨.’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그녀를 또 놀라게 했다. 지금 동거하고 있는 남자 친구는 수잔 엄마보다도 무려 9년이 연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그 남자는 결혼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인데 수잔 엄마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다고 한다. 애초에 그냥 가만있을 걸 부모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본 것이 후회막심했다. 그리고 안 해도 되는 말까지 다 풀어놓는 미나가 도리어 철딱서니 없어 보였다. 결론만 알고 이런저런 얘기는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백인 남자들은 동양 여자 좋아하지만 백인 여자들은 안 그렇거든요. 그런데 수잔 같은 애가 크리스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만큼 크리스가 잘났기 때문 아니겠어요? 크리스도 그랬어요. 이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유머도 풍부하고 센스도 있는 수잔이 어떻게 자기를 좋아하는지 신기하대요.

  영미는 속이 뒤틀려 있기에 말도 뒤틀려나왔다. 미나의 말뜻을 뻔히 알면서도 마음에도 없는 말이 나왔다.

  “너같이 똑똑한 애도 백인우월주의 사상을 갖고 있니? 크리스도 그렇고?

  그런 건 아니라면서 영미의 본마음을 다 아는 듯이 미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근데 그렇게 잘난 애가 서른넷이나 되도록 왜 아직 시집을 못 갔대니?

  “이제 서른넷인데 그게 뭐가 많아요? 그동안 공부하느라고 결혼은 생각지도 못했을 거예요. 의사가 되려면 보통 애들보다도 훨씬 더 긴 세월이 걸린다는 거 숙모님도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기특한 건요, 지금 수잔이 한국어를 배우려고 굉장히 애를 써요. 저보고도 한국말 하라고 그래요. 크리스한테서 그동안 한국말을 많이 배웠더라고요.

  아예 작정을 단단히 한 모양이군.

  미나는 수잔의 사진을 두 장 꺼내놓았다. 작년에 있었던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 때 찍은 것이었다. 한 장은 미나와 단둘이 의자에 앉아 찍은 것으로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돼 있었기에 눈, , 입의 생김새를 자세히 볼 수가 있었다. 서른이 넘은 애가 참 어려 보였다. 그리고 예뻤다. 아주 예뻤다. 치아가 쪽 고른 것이 활짝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밝고 예뻤다. 아들이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고 영미가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이상하게도 아들과 영미의 눈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영미는 얌전하게 귀티 나는 하얗고 고운 얼굴을 좋아하는데, 아들은 정반대다. 눈도 코도 입도 다 크고 부리부리한 인상에 피부가 거무티티해도, 안 좋게 말하자면 좀 천박스러운 그런 얼굴을 예쁘다고 했다. 광대뼈가 나온 것도 매력적이라고 해 영미는 질색을 했었다.

 

  대학원 때, 한 여자애하고 사귄 적이 있는데 그 애가 딱 그랬다. 그러나 훤칠하게 키도 크고 성격도 아주 발랄하고 상냥했다. 영미네 집에도 자주 들랑거렸고 아들은 그 집에 더 자주 가서 밥도 많이 얻어먹곤 했는데 어쩐 일인지 둘 사이가 깨져버렸다. 결혼까지 해도 반대할 의향은 없었는데 별로 섭섭하지가 않았다. 그 애 아버지가 세 번째 무릎 수술을 하고 누워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 탓도 있었을 게다. 아들 말이 미국 와서 내내 가드너로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직업에 무슨 귀천이 있냐 하는 흔한 말로 감정을 짓뭉개버렸다.

  그런데 세상이 좁다보니 영미가 나가는 교회의 사모님이 그 애의 집안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안 들으니 만 못한 소식이었다. 부모는 교육을 받지 못한 농사꾼이고, 그 애 고모가 미국 군인이랑 결혼을 해 줄줄이 이민을 온 것이라 했다. 그러나 자식들은 다 잘 키워놓지 않았는가? 남의 집 풀을 깎느라 무릎이 박살이 난 것도 자식들의 교육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미는 그냥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하는데 남편이 펄펄 뛰고 반대를 했었다. 그 애가 오면 아주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해 그녀는 가슴을 졸였다.

  “세상에 그렇게 못 생긴 애는 처음 봤네. 툭 튀어나온 광대뼈에다 웃으면 잇몸까지 다 드러나 도대체 마주보기조차 역겨운데 그 녀석이 눈이 삐어도 한참을 삐었지.

  아무리 제 눈이 안경이라 하더라도 영미 역시 그 애를 매력적이라고 하는 아들이 참 아리송했다. 어찌 보면 수잔이 한국 애 같고 그 애는 히스패닉 계통의 여자 같았다.

  , 그래서 처음엔 하나도 예쁘지 않다고 생각을 했나 보구나. 자기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수잔의 얼굴은 지성미를 갖춘 고귀함이 깃들어 있었고 보통 미국 애들처럼 선이 굵지가 않고 지극히 섬세한 면을 갖춘 동양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 한 장은 미나 남편도 같이 서서 찍은 몸 전체가 다 나와 있는 사진이었다. 체격도 자그마했고 키도 미국 애치고는 아주 작은 편이었다. 아들이 키가 크긴 하지만 수잔은 그 어깨에 겨우 미쳤다.

  “무슨 미국 애가 동양 애처럼 생겼니?

영미의 음성이 처음보다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미나는 기회를 잡은 듯이 다시금 수잔의 칭찬에 열을 올렸다.

  “그래서 저도 고등학교 때 같이 치어리더를 하면서 더 친근감이 갔었어요. 애가 어찌나 상냥하고 귀여운지 다들 좋아했어요. 공부도 굉장히 잘해서 물리랑 수학은 2년이나 위인 우리 반에 와서 같이 배웠어요.

  똑똑한 것은 좋지만 너무 넘치는 것 같았다.

  “얘, 너무 머리 좋은 며느리는 골치 아파. 그리고 의사 며느리 나는 별로 취미 없다. 맨날 바빠 어디 애 낳을 시간이나 있겠니? 또 크리스가 밥이나 제대로 얻어먹겠니?

  의사라는 말이 솔깃 안 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허나, 영미는 도리어 반대 방향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며느리라는 말이 영미의 입에서 나오자 미나는 신이 나서 수잔을 추어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녜요. 골치 아플 거 하나도 없어요. 똑똑하면서 건방지다면 좀 문제가 되겠지만 수잔은 겸손하고 착해요.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수잔이 더 좋아졌다고 크리스가 그랬어요. 그리고 수잔은 결혼 후에는 학교에서 일하기를 원하고 있어요. 학교에 속한 의사 있잖아요. 돈은 조금 받더라도 방학도 있고 선생들이랑 똑같이 출근하고 퇴근하니까 시간도 짧고요.

  미나가 떠난 후, 영미는 도무지 실감이 안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엄마. 수잔하고는 그냥 친구예요. 결혼은 한국 애하고 할 테니 걱정 마세요.’ 하고 싱글싱글 웃으며 크리스가 들어설 것 같았다. 한데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미나를 통해 모든 사실을 통보해놓고 녀석은 지금 마음을 졸이고 있을 것이다. 아니다. 이건 아들의 마음을 모르는 엄마의 망상일 수도 있다. 엄마가 뭐 별수 있겠어? 하고는 싹 무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낳은 아들 속을 그렇게 몰랐다니····. 조건이야 어찌 됐던 간에 아들한테 속았다는 감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미의 화를 돋우었다. 녀석이 자기가 낯이 간지러워 직접 대놓고 말하기가 난처할 것 같으니 미나를 시켜 자기 의사를 엄마한테 전한 것이 뻔하다. 결혼은 꼭 한국 애랑 한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니 면목이 없을 것이다. 그것도 장손 운운하면서 말이다.

  나쁜 놈. 크리스한테 완전히 속아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에서만 엄마 엄마 하고 비위를 맞추면서도 속은 따로 간직한 것 같은 아들의 이중성에 실망감이 몰려와 헛산 것 같았다. 여느 때도 자상한 아들이었으나 얼마 전부터 크리스는 눈에 띄게 엄마한테 잘했다. 전화도 더 자주 걸었고, 지난번 영미 생일 땐 뉴욕에 가 있었는데, 장미로만 엮은 꽃다발에서부터 의외의 거금을 보내주었다. 이게 다 수잔이라는 미국 애를 마음에 담고, 엄마한테 미안해서 그런 것일까? 아들의 속셈이 따로 있는 것도 모르고 영미는 한껏 행복해했었다.

  미나 말대로 아들은 지금까지 부모 속을 썩인 일이 한 번도 없다. 그것도 표면에 나타난 것뿐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혹시 영미가 모르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속고 사는 부모가 한둘이 아니라는데 영미도 그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잘 나가다가 막판에 와서 이렇게 속을 뒤집어놓다니. 차라리 자라면서 좀 속을 썩인 것이 훨씬 더 나을 뻔했다. 남들처럼 한국 애하고 결혼만 해주었더라면 말이다.

 

  실은 속으론 다 결정이 나 있었다. 미국 며느리를 맞아야 한다는 각오가 된 것이다. 친구의 아들 모양 애 딸린 미국 애가 아니니 그것만이라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아들의 마음이 다 정해졌고, 더구나 수잔이랑 결혼을 하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다는데 따르지 않고서 어쩔 수 있겠는가?

  수잔이 한국어를 배우듯이 이제 영미도 영어를 배워야 한다. 미국 온 지 30년이 다 돼가지만 영미의 영어 실력은 창피할 정도다. 영미는 평생을 직장 생활 한 번 못 해보고 집에서 살림만 했다. 종갓집 큰며느리로서 늘 시댁 일 때문에 바빴다.

  그놈의 기일은 어찌나 자주 돌아오는지····. 시아버지에서부터 시할아버지 할머니, 또 한분의 시할머니. 시어머니는 예전엔 증조 대까지도 모셨다고 그러셨다. 허지만 1년에 네 번, 그것도 버거웠다. 매년 시어머니의 생신을 도맡아 차려야 하는 영미의 고충도 큰며느리는 으레 그래야 한다고 다들 당연지사로 여겼다. 설날과 추석에는 증조 대까지 여섯 명의 밥그릇을 나란히 차려놓고 차례를 지냈다. 시누이나 동서들은 그냥 손님처럼 왔다가곤 했다. 바쁘다면서 코빼기도 안 내밀 때도 있었다. 물론 다 직장 생활을 한다는 핑계가 그럴 듯했다. 그래서 영미도 직장 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평생을 부엌대기 노릇만 할 수밖에 없었다.

  미나 어머니인 시누이는 이런 영미를 앞에 대놓고 “어떤 년은 팔자 좋아····.” 하면서 남편 돈 잘 벌어와 집에서 애 키우고 살림만 하는 팔자 좋은 여자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질투를 했었다. 그러나 살림은 늘 쪼들렸다. 남편은 가정 경제가 어찌 돌아가는지 통 몰랐다. 월급이 은행으로 자동입금이 되는 걸로 그의 의무는 끝나고 그 다음 일은 모두가 영미 몫이었다. 차라도 고장이 날 경우는 이래저래 메꾸느라 그녀는 골머리를 앓았다. 영미가 좀 더 진취적이었더라면 무엇이라도 배워서 돈을 벌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겠으나 영미는 그렇지가 못했다.

  이제는 진짜로 ‘아들이 돈 잘 벌어와····.’로 바뀌어야 할 시누이의 말이 딱 들어맞는데도 그녀의 입은 꿰맨 듯이 고요하다.

  미국에 살아도 한국 문화를 그대로 고수해야 하는 가풍, 과연 이러한 풍습이 아들 대에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하고 영미는 가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며느리는 물론 한국 애임이 기정사실이었다. 한데 지금 장손 며느리로 미국 애가 들어오게 생겼으니 어쩐다? 시어머니는 절대로 안 된다고 노발대발할 것이다. 허나 아들은 할머니의 허락도 분명히 받아낼 것이다. 미나 역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손녀이니 둘이서 공동작전을 펴면 할머니는 금세 녹아떨어질 것이 뻔하다.

  그런데 남편이 문제다. 고지식하기 그지없고 고집불통인 그가 어찌 나올지 걱정인 것이다. 시어머니가 원해서 노인아파트로 분가할 때도 남편은 펄펄 뛰면서 반대를 했다. 장남 체면에 남세스럽다는 것이었다. 영미가 직장을 갖지 못한 것도 아내가 일을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남편 탓도 있었다.

  남편을 설득할 일도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집안의 허락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말이 안 통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문화의 차이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한국 애라 하더라도 집안끼리의 문화가 다른데, 이건 나라끼리의 문화이니 그 차이가 오죽하겠는가? 아들은 이러한 문제들은 뛰어넘을 수가 있을까? 뛰어넘지 못하면 밀어버리고 나가리라는 자신을 가졌기에 수잔과의 결혼을 결심한 것일 게다.

수잔을 위해서는 부모도 할머니도 다 밀어내버리는····.

  내 아들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아들을 결혼시킨 후에 실망감을 보듬고 밤을 지새우다 이제는 졸업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품 안의 자식이 아니고 품 밖의 자식이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간에 영미는 아들을 너무 좋아했다. 아내에게는 항상 무관심한 남편이었기에 아들한테 더 의지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슬슬 마음을 접으며 냉정을 찾자. 영미 자신을 위해서도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갑자기 마음이 갈팡질팡해지기 시작했다. 냉정해지기는커녕 영미의 마음은 아들에게로 아주 급하게 달음질을 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도 속았다는 기분에 괘씸하기만 하던 마음이 어느새 뒤바뀌어버린 것이다. 나쁜 놈 하고 욕을 퍼부은 지가 얼마나 됐다고, 참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줏대 없이 흔들거리는 것이 자신이 보기에도 부끄러웠다. 그러나 아들에게로 쏠려가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미나에게 뒤틀린 속을 보인 것이 후회스러웠다. 미나는 크리스랑 연락이 될 텐데 ‘틀렸어 틀렸어. 엄마 반응이 영 안 좋아.’ 이렇게 말하면 어떡하지? 미나 말대로 크리스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라도 걸어 ‘엄마는 너를 믿으니까, 배우자도 네가 잘 선택했으리라 믿어. 미국 애라도 아무 상관없으니 니가 좋으면 엄마는 대 찬성이야.’ 하고 아들에게 어서 빨리 말하고 싶은 충동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치밀어 올랐다. 아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 같아 그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다.

  1년 동안이나 엄마한테 말을 못 하고 끙끙 앓은 아들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참았다. 후다닥 전화를 걸기엔 영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고 미나와의 약속도 있고 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수잔 이야기를 꺼내면 곧바로 허락을 하리라 다짐을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반찬도 만들어주고, 앨 낳으면 애도 봐 주고····.

  한국말 잘하는 한국 며느리를 본 어느 친구의 말이 언뜻 생각났다. 시아버지 앞인지 누구 앞인지 분간도 못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탁 탁 내뱉을 때는 그만 가슴이 철렁철렁해 친구가 도리어 눈 둘 바를 몰라 쩔쩔 맨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지 않은 며느리가 더 많겠지만 그런 며느리와 비교하면서 위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크리스가 오기 전에 남편을 설득해야 한다. 뭐라고 서두를 꺼낼까. 참으로 난감하다. 남편으로부터 ‘오케이’라는 말이 나오도록 곰곰이 생각을 하면서 연구를 했다. 수잔 엄마에 대해서는 우선 함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수잔 아빠하고 이혼하고 지금은 독신이라는 정도만 밝히기로 했다. 어쨌든 독신은 독신이니까.

 

  숙제가 해결이 되었다. 수잔과 결혼을 하면 평생 행복하게 잘 살 것 같다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이 활짝 웃으며 엄마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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